요즘 신문을 보면 학교 담밖(아시다시피 필자는 기숙학교에 '복무'한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한편의 무성영화같이 보인다. 극적으로 돌아가면서도 담장 안이라서(또는 기회가 없어서)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김 빠지는 일이다. 어쩌다 소리가 난다 치면, 그것은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하는 얘기로서나 신문이 너무 생생해보여 머릿속에 울려 퍼짐으로 성립되는 한편의 신파영화(무성영화에 옆에서 소리꾼 한 명이 혼자서 별의별 소리 다 넣어주는 영화더러 이렇게 부르던가?)일 뿐이다. 학교는 담밖 사회와 결별한 듯 따로 논다. 사회는 급변하며 살아남을 것을 요구하는데, 필자가 복무하는 이놈의 학교는 사회에서 잘 써먹지도 못할, 형편없는 '보편'만을 가르칠 뿐이다. 차라리 담밖 사회에 섞인 다른 학교들은 사회 유연성을 최소한이나마 가미해서 가르치기라도 한다.
신문을 보면 집값이 치솟는다니, 환율이 급하락한다니,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느니, 북핵 문제가 눈앞이다니, 진보와 보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느니, 간첩모의 사건이 일어났다느니, 정당 재편 논의가 일고 있다느니, 썩을 놈의 FTA라느니 하는 갖가지의 머리아픈 얘기들이 돌고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바다에 비유하자면, 바람 잘 날 없는 폭풍지대인 것이다. (대학 때 까지는 사회 풍랑에 휩쓸리지 않을 일부 선택받은 사람들이 있긴 하나) 좋든 싫든, 해마다 고등학교 졸업 학생수 만큼의 병력이 '사회 상륙작전'에 투입되는 것이다. 하지만 작전이 성공할 것 같지는 않다. 생각해보자. 청둥오리들은 태어나면 뭍에서 놀다 어미를 따라 물에서 헤엄치는 연습을 하고, 마지막에는 나는 연습을 한다. 청둥오리들의 좋은 점은 생존의 전장과 비슷한 환경 속에서도 얼마든지 실전에 가까운 연습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항해사들은 스스로 조타를 할 수 있기 전 까지는 베테랑 항해사의 이론 강의와 (아직까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조타 연습을 한다는 소리를 못 들었으니) 항해 조교가 함께하는, 실제 풍랑에 맞서 연습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 사람들은 몸소 체험하며 기술을 익힌다. 경험보다 더 나은 선생은 없는 법이니 말이다. 위의 비유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운전면허증 딸 때 이론 강의만 들으면 거저 주던가? 그런데 학교라는 것은 이 모양이다. 사회 상륙작전이 성공하질 못하니 매번 훈련(이랄 것도 없는 이론 강의)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뭐, 바꾸나 마나 매양 같지만. 그런 의미에서 그것 하나 제대로 못하는 필자의 학교는 참으로 '예스터데이 팩토리(Yesterday Factory)'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역설은 가끔 하나) 누구 하나 개혁의 기치를 드리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학생이 개혁의 기치를 드리우면 너무나 파격적인 일이 되니, 여기서는 물론 선생님들 얘기다.) 불평을 하고, 뒷담화를 까고, 얘들아 너희들은 어떠냐 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 하지만 실천이 없다. 여기에는 절대 권력자가 한몫하고 있을 것이다. 교장, 교감을 포함한 교내위원회라는 권력 말이다. (사립도 아닌데 이런 말을 왜 쓸까? 호박에 줄을 그어본 걸까?) 전임 교장 때하고 비교하면, 개판이다. (전임 교장 재직 당시에는 '폭정이다', '압박이 심하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으나 지금에 와서 행정면을 재평가해보자면 꽤나 괜찮았다. '순(純)한 박정희'인 것이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술술 흐른다. 하지만, 위원회에 포함된 '외부인사'는 전혀 바뀐게 없다.) 지금의 교장은, 재직 8개월인 즈음에 와서 생각해보건대 '실패한 독재자'이다. 일화를 예로 들어보자. 학교 내에서, 춥다고 이제 난방기구를 가동할 때라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안 듣던 이가 학부모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니 바로 조치에 들어갔다. 이틀 전에서야 가동이 시작되었다. 냉난방 비용으로 나오는 교육청 지원비가 충분한데도 말이다. (세금을 떼먹어서 대단히 죄송하나, 난방 비용을 다 쓰지 않고 남은 돈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른다. 과연 '전액'을 우리를 위해 쓰고 있는 것이 맞긴 한가?) 한마디로 '대외 이미지 통치'를 하는 것이다. 또 하나 있다. 오늘 아침의 일인데, 모두가 피곤해서 책상에 엎어져있을 때에 교장이 문을 열고 교실에 목을 드리웠다. (평소에 잘 들어오지도 않던 이가 말이다.) 왜 자고 있냐고 하더라. 수능에 몸을 맞추라는 의도까지는 좋았다. 근데 한심하다는 듯 '쯧'하는 소리를 크게도 내더라. 갑자기, 보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 짜증이 나서 그 이가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욕을 해댔다. 필자도 거들었다. "씨X, 불만이여?" 해준 것도 별로 없는 이가 요구하는 것은 참 많다.
이 시기에 필자가 이런 글을 쓸 이유는 없다. 솔직히, 수능을 12일 남긴 상태에서, 공부도 제대로 안 하고 그저 무념무상으로 공부에 임하는 이가 이런 글을 펼 충분한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주말이고, 매일 아침마다 신문을 보면서 그다지 즐겁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말 마저도 허구일 것이다.) 이미 필자의 수시 열 중에 아홉이 휴지가 되어는데도 말이다. 그나마 남은 하나도 휴지가 될 것이 뻔한데. 능력도 없는 인간이 이런 논리를 편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뿐인데!
신문을 보면 집값이 치솟는다니, 환율이 급하락한다니,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느니, 북핵 문제가 눈앞이다니, 진보와 보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느니, 간첩모의 사건이 일어났다느니, 정당 재편 논의가 일고 있다느니, 썩을 놈의 FTA라느니 하는 갖가지의 머리아픈 얘기들이 돌고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바다에 비유하자면, 바람 잘 날 없는 폭풍지대인 것이다. (대학 때 까지는 사회 풍랑에 휩쓸리지 않을 일부 선택받은 사람들이 있긴 하나) 좋든 싫든, 해마다 고등학교 졸업 학생수 만큼의 병력이 '사회 상륙작전'에 투입되는 것이다. 하지만 작전이 성공할 것 같지는 않다. 생각해보자. 청둥오리들은 태어나면 뭍에서 놀다 어미를 따라 물에서 헤엄치는 연습을 하고, 마지막에는 나는 연습을 한다. 청둥오리들의 좋은 점은 생존의 전장과 비슷한 환경 속에서도 얼마든지 실전에 가까운 연습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항해사들은 스스로 조타를 할 수 있기 전 까지는 베테랑 항해사의 이론 강의와 (아직까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조타 연습을 한다는 소리를 못 들었으니) 항해 조교가 함께하는, 실제 풍랑에 맞서 연습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 사람들은 몸소 체험하며 기술을 익힌다. 경험보다 더 나은 선생은 없는 법이니 말이다. 위의 비유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운전면허증 딸 때 이론 강의만 들으면 거저 주던가? 그런데 학교라는 것은 이 모양이다. 사회 상륙작전이 성공하질 못하니 매번 훈련(이랄 것도 없는 이론 강의)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뭐, 바꾸나 마나 매양 같지만. 그런 의미에서 그것 하나 제대로 못하는 필자의 학교는 참으로 '예스터데이 팩토리(Yesterday Factory)'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역설은 가끔 하나) 누구 하나 개혁의 기치를 드리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학생이 개혁의 기치를 드리우면 너무나 파격적인 일이 되니, 여기서는 물론 선생님들 얘기다.) 불평을 하고, 뒷담화를 까고, 얘들아 너희들은 어떠냐 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 하지만 실천이 없다. 여기에는 절대 권력자가 한몫하고 있을 것이다. 교장, 교감을 포함한 교내위원회라는 권력 말이다. (사립도 아닌데 이런 말을 왜 쓸까? 호박에 줄을 그어본 걸까?) 전임 교장 때하고 비교하면, 개판이다. (전임 교장 재직 당시에는 '폭정이다', '압박이 심하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으나 지금에 와서 행정면을 재평가해보자면 꽤나 괜찮았다. '순(純)한 박정희'인 것이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술술 흐른다. 하지만, 위원회에 포함된 '외부인사'는 전혀 바뀐게 없다.) 지금의 교장은, 재직 8개월인 즈음에 와서 생각해보건대 '실패한 독재자'이다. 일화를 예로 들어보자. 학교 내에서, 춥다고 이제 난방기구를 가동할 때라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안 듣던 이가 학부모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니 바로 조치에 들어갔다. 이틀 전에서야 가동이 시작되었다. 냉난방 비용으로 나오는 교육청 지원비가 충분한데도 말이다. (세금을 떼먹어서 대단히 죄송하나, 난방 비용을 다 쓰지 않고 남은 돈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른다. 과연 '전액'을 우리를 위해 쓰고 있는 것이 맞긴 한가?) 한마디로 '대외 이미지 통치'를 하는 것이다. 또 하나 있다. 오늘 아침의 일인데, 모두가 피곤해서 책상에 엎어져있을 때에 교장이 문을 열고 교실에 목을 드리웠다. (평소에 잘 들어오지도 않던 이가 말이다.) 왜 자고 있냐고 하더라. 수능에 몸을 맞추라는 의도까지는 좋았다. 근데 한심하다는 듯 '쯧'하는 소리를 크게도 내더라. 갑자기, 보는 사람 듣는 사람 모두 짜증이 나서 그 이가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욕을 해댔다. 필자도 거들었다. "씨X, 불만이여?" 해준 것도 별로 없는 이가 요구하는 것은 참 많다.
이 시기에 필자가 이런 글을 쓸 이유는 없다. 솔직히, 수능을 12일 남긴 상태에서, 공부도 제대로 안 하고 그저 무념무상으로 공부에 임하는 이가 이런 글을 펼 충분한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주말이고, 매일 아침마다 신문을 보면서 그다지 즐겁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말 마저도 허구일 것이다.) 이미 필자의 수시 열 중에 아홉이 휴지가 되어는데도 말이다. 그나마 남은 하나도 휴지가 될 것이 뻔한데. 능력도 없는 인간이 이런 논리를 편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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